[대한행정사신문 송경택 기자]
대한민국 행정의 구조가 급속한 속도로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행정사 직역이 새로운 변곡점을 맞고 있다. 정부는 AI 전자정부, 데이터 기반 정밀행정, 전자증명 기반의 자동 행정 절차를 중점 추진하며 행정 체계를 디지털 중심으로 재설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행정 업무 전체가 온라인화되고 자동화되는 반면, 국민의 권리 보호에 필요한 전문성은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이 변화는 행정사에게 단순한 업무 변화가 아닌 직역의 존재 방식 자체를 재 정의하는 수준의 충격을 주고 있다. 기자가 관련 기관과 행정사 현장을 심층 조사한 결과, 기술이 빠르게 시스템을 바꾸고 있지만, 전문 직역인 행정사는 여전히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기술과 직역의 간극
AI는 행정을 바꾸지만, 이해와 해석의 격차는 더 커진다
AI 기반 행정 시스템은 문서 작성, 기초 검토, 사전 안내까지 대체하기 시작했다. 출입국 체류 연장 사전 진단, 건축 사전 심사, 온라인 과태료 자동 확인, 지원금 적합도 분석 등 민원 행정의 첫 단계는 대부분 AI가 담당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정밀해질수록 “해석의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민원인의 상황을 데이터로 단순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술이 빠르게 처리하는 민원 행정의 이면에는 특수 상황, 예외 적용, 소명 자료 구성 등 전문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 여전히 존재한다.
서울의 한 민원센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AI는 정답 과정은 수행하지만, 정답 여부를 판단하진 못합니다. 실제 민원은 해석의 영역이 절반입니다. 이 절반을 담당하는 사람의 전문성이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필자의 취재 결과, AI 기반 행정이 확산될수록 행정사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두 갈래로 나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하나는 AI로 대체되는 단순 대행 영역,
다른 하나는 오히려 AI 시대에 더욱 필요해지는 판단·분석·해석의 영역이다.
문제는 직역 전체가 두 번째 영역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라는 점이다.

행정사 직역이 안고 있는 다섯 가지 구조적 문제
필자가 조사한 현장의 문제는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행정사들이 행정 디지털 전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행정기관은 OCR 기반 문서 자동 추출, AI 자동 심사, 빅데이터 기반 민원 분류 체계를 이미 운영 중이다. 하지만 다수의 행정사는 제도 변화 속도를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구조 내부의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둘째, AI 자동문서 시대의 도래로 단순 서류 대행 업무는 시장에서 빠르게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일부 AI 플랫폼은 5000원 이하의 서류 자동 작성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장을 넓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행정사와 무자격 플랫폼의 경계는 흐려지고, 민원 피해는 증가하고 있다.
셋째, 초고속 정책 변화 속도가 현장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연간 4000건 이상의 행정 문서 개정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를 직역 전체가 공유하거나 해석을 통일하는 구조는 여전히 미흡하다. 같은 사례를 두고 행정사 마다 서로 다른 해석을 제시하는 현상도 확인됐다.
넷째, 디지털 취약계층의 증가로 행정 접근성 격차가 커졌다.
행정의 디지털 전환은 속도는 높였지만, 접근성을 낮추고 있다. 고령층, 외국인, 장애인, 1인가구 등은 온라인 행정 절차를 스스로 처리하기 어려워졌고, 이들의 주요 민원 파트너는 사실상 행정사뿐이다.
다섯째, 민원 리스크가 AI 시대에 더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 기반 사전 심사가 확대되면서 오히려 작은 정보 누락이 반려나 불허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었다. AI 시스템의 오류는 공무원이 아닌 민원인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을 줄 수 있다.
기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 다섯 가지 문제는 각각 독립된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돼 있다.
기술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지만, 인간 판단의 중요성도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AI가 만든 일곱 가지 새로운 행정사 역할
기자가 국내외 행정 디지털 전환 자료와 현장을 종합 분석한 결과, AI 시대 행정사의 업무 모델은 다음 일곱 가지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 데이터 기반 민원 분석가
민원은 단순 처리에서 예측 기반으로 이동하고 있다.
출입국 불허 가능성 분석, 건축 반려 예측, 장기 요양 등급 가능성 진단 같은 데이터 기반 보고서는 향후 필수 서비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AI 민원 감독자
AI가 자동 생성한 문서를 검증하고 오류를 교정하는 인간 감독자 역할이 강화된다.
AI가 잘못 처리한 민원은 결국 사람의 책임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셋째, 정책 해석 전문가
정책 신설은 매년 550건 이상, 정책 문서 개정은 4000건 이상이다.
민원인의 상황에 맞게 정책을 해석하고 선택지를 설계하는 전문가의 수요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넷째, 생활행정 데이터 파트너
민원은 더 이상 단일 사건이 아니다.
건강 데이터, 소득 데이터, 출입국 기록, 가족관계, 사업 이력 등 사람이 살아온 전체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역할이 요구된다.
다섯째, 인간 기반 행정 전문가
디지털 약자를 위한 현장 안내, 대리 접수, 상황 조정, 의견서 작성 등 AI가 수행할 수 없는 인간적 행정 서비스가 더 중요해진다.
여섯째, 민원 리스크 디자이너
사후 해결이 아니라 사전 예방 중심의 민원 보호 모델이다.
위반 가능성 차단, 부정수급 리스크 예방, 반려 가능성 분석 등 사전 설계가 핵심이다.
일곱째, 행정 인터페이스 설계자
민원인과 행정기관, AI 시스템의 간극을 해소하는 전문 교섭자 역할이다.
기술이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
기술이 직역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준비하지 않은 전문가만 사라질 뿐이다.
기술이 인간 전문가의 역할을 대체한다는 주장과 달리, 기자가 분석한 AI 시대 행정의 흐름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AI는 작업을 자동화하지만, 판단을 자동화하지는 못한다.
권리를 보호할 수 없고, 상황을 해석하지 못하며, 민원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결국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 전문가의 역할은 더욱 고도화된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AI 시대에 사라지는 것은 행정사가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행정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