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엔 안 보여도 고통은 현실”… 국가유공자 상이등급 판정의 사각지대[대한행정사회신문=김정섭 기자]
국가유공자 보훈제도의 본질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헌신한 이들의 삶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그러나 현실의 보훈행정은 때때로 그 약속과는 거리가 먼 결과를 낳고 있다.
최근 한 국가유공자의 상이등급 재판정 사례는 현재 보훈심사 체계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척추 수술 이후에도 지속적인 통증과 신경학적 장애를 겪고 있는 신청인이 “상이등급 비해당” 판정을 받은 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까지 청구하게 된 사건이다.
신청인은 과거 상이등급 7급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이후 질병 악화로 재판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국가보훈부는 상이등급 비해당 결정을 내렸고, 이에 신청인은 2026년 4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후 5월에는 행정사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의학적·법률적 논리를 담은 보충서면을 제출하며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하다. 국가가 실제 장애의 본질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영상자료와 형식적 기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신청인은 요추 L3~5 부위에 대한 후방고정술 및 척추유합술을 받은 상태다. 하지만 수술 이후에도 하지 방사통과 감각저하, 저림 증상, 장시간 보행 곤란, 지속적인 통증 등 신경학적 이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훈부는 MRI상 뚜렷한 신경근 압박 소견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를 중심으로 상이등급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신청인 측 행정사는 보충서면에서 “영상자료 중심 판단의 위법성”을 강하게 지적했다.
보충서면에 따르면 상이등급 판정은 단순히 MRI나 CT에서 병변이 얼마나 선명하게 보이느냐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신경학적 증상의 존재 여부와 정도, 수술 이후 후유장애의 지속성, 척추 기능 제한, 노동능력과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척추질환은 영상자료와 실제 임상증상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대표적 질환이라는 점도 강조됐다.
실제로 의학계에서도 척추질환은 영상검사보다 환자의 임상증상과 기능제한 평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MRI상 이상 소견이 경미하더라도 환자가 극심한 통증과 운동 제한을 겪는 사례는 적지 않다.
특히 척추수술 이후에는 구조적 변화와 신경 손상, 유착 등으로 인해 영상자료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만성 통증과 신경증상이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현재 보훈심사 체계는 여전히 “영상상 압박 여부”를 핵심 기준처럼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신청인 측은 보충서면에서 “영상자료는 여러 판단 요소 중 하나일 뿐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영상소견만으로 기능장애를 경미하게 평가하는 것은 상이등급 판정 기준 자체를 오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부분은 척추유합 상태에 대한 해석이다. 보훈부는 신청인의 척추가 “유합 상태”라는 점을 근거로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청인 측은 이에 대해 “유합 상태를 치료 완료 상태로 오해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척추 유합술은 정상 상태로의 회복을 의미하는 수술이 아니다. 손상되거나 불안정한 척추를 인위적으로 고정함으로써 더 이상의 악화를 막는 치료다. 다시 말해 일정 부분 척추 운동 기능 상실을 전제로 하는 수술이다. 따라서 유합 상태는 단순한 안정화가 아니라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구조적 손상과 기능장애가 고착됐음을 의미한다는 것이 의학적으로도 타당한 해석이다.
유합이 이뤄진 부위는 정상적인 가동 범위를 잃게 되고, 인접 척추 부위에 부담이 증가하면서 만성 통증과 추가 퇴행 가능성도 높아진다. 또한 수술 이후에도 신경 자극과 방사통, 감각저하 등이 지속되는 사례가 흔하다. 결국 “유합 상태”는 경미함의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영구적 기능제한 존재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신청인 측 주장이다.
행정사는 또 보훈부의 판단이 재판정 기준과도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보훈부는 형식적으로는 “현재 상태 기준”으로 심사한다고 설명하면서도, 실제 판단에서는 현재 존재하는 기능장애와 신경학적 증상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청인의 경우 수술 이후에도 하지 방사통과 감각저하가 지속되고 있고, 장시간 보행과 좌위 유지가 어려우며 노동능력에도 상당한 제한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요소들이 심사 과정에서 사실상 축소 평가됐다는 주장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판단이 신청인의 삶 전체를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신청인은 척추 수술 이후 기존 직장에서 지방 발령을 받았지만 신체적 제약으로 정상적인 근무 수행이 어려워 결국 실업 상태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현재는 장시간 보행과 지속적인 앉은 자세 유지가 어려워 재취업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활동 제한으로 인해 체중 증가와 건강 악화까지 겪고 있으며, 상이 및 수술 이력으로 보험 가입 제한 등 사회·경제적 불이익도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상이등급 판정은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생계와 노동, 존엄과 사회적 보호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다. 그런데 현재 제도는 “영상 속 이상”은 세밀하게 들여다보면서도 “삶 속의 장애”는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국가유공자 상이등급 심사 체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가보훈부 보훈심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26년 4월 기준 신규·재확인 심사에서 등급판정 기준 미달 비율은 절반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등록 재판정에서도 상당수가 무변동 또는 하락 판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물론 엄격한 심사는 필요하다. 국가 재정과 제도의 공정성을 고려하면 객관적 기준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객관성이라는 이름 아래 실제 기능장애와 삶의 고통을 외면하는 순간 제도는 존재 이유를 잃게 된다. 특히 척추질환과 같은 기능장애 중심 질환은 단순한 영상자료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신청인 측 행정사는 보충서면에서 이번 처분이 단순한 판단 차원을 넘어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존재하는 신경학적 이상과 기능장애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고, 영상자료에 과도하게 의존했으며, 결과적으로 신청인의 실제 상태와 현저히 불균형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오인과 판단기준 오류, 비례원칙 위반이 복합적으로 발생한 사례라는 주장이다.
보훈은 단순한 행정서비스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희생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회적 기준이다. 국가유공자 제도는 단순히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의 삶과 존엄을 사회가 어떻게 기억하고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약속이다.
따라서 상이등급 판정 역시 단순히 “얼마나 선명하게 보이는가”보다 “얼마나 삶을 제한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척추질환과 외상 후 통증증후군, 신경병증과 같은 기능장애 중심 질환에 대해서는 영상자료뿐 아니라 근전도 검사, 통증 지속성, 노동능력 제한, 일상생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심사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국가의 책임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고통까지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