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지킨 동기의 눈물, 그리고 닥쳐온 현실적 고민
해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동기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오신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계신데, 장례 방식과 묘지 설치 문제를 두고 가족 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내가 죽거든 고향 선영에 묻어달라”는 뜻을 분명히 남겼지만, 어머니와 누나는 관리의 어려움을 이유로 화장 후 가까운 봉안당 안치를 원하고 있었다.
동기는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마지막 뜻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괴로워하고 있었고, 결국 필자에게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과 관련 판례상 어떤 방식이 법적으로 우선하는지 조언을 구해왔다.

이 문제는 단순한 가족 갈등이 아니다.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전통적 가족관념과 변화된 법질서가 충돌할 때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망인의 유언은 반드시 따라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망인이 생전에 매장 장소나 장례 방식에 관한 의사를 남겼더라도 그것이 남은 가족들에게 절대적인 법적 의무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망인의 유체와 유골에 관한 권리는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망인의 의사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지만, 법적으로는 제사주재자가 유해의 관리·처분에 관한 권한을 가진다. 그 결과 가족들이 망인의 유언과 다른 방식으로 장례를 진행하였다고 하여 곧바로 형사처벌이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는 망인의 의사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법원 역시 망인의 생전 의사는 중요한 판단 요소로 고려하고 있으며, 가족 간 분쟁에서도 도의적·윤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지금 법에서 말하는 ‘제사주재자’는 누구인가?
동기는 자신이 장남이므로 당연히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 우리 사회의 관습과 오래된 판례 흐름에서는 어느 정도 그렇게 이해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202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러한 기준을 크게 변경하였다.
현재 법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장 우선되는 것은 가족 간 협의이다. 배우자와 자녀들이 원만하게 합의하는 것이 최우선 원칙이다.
둘째,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최근친 직계비속 중 최연장자’가 제사주재자가 된다. 여기에는 성별 차별이나 장남 우선 원칙이 인정되지 않는다.
즉, 아들과 딸을 구별하지 않고 가장 나이가 많은 자녀가 우선하게 된다. 따라서 이 사안에서는 동기에게 누나가 있으므로, 가족 간 합의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법률상 제사주재자는 장남인 동기가 아니라 최연장 자녀인 누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유해의 관리·처분이나 묘지 설치와 관련한 민사법적 판단에서도 누나의 의사가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장사법상 ‘연고자’의 순위는 어떻게 될까?
한편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별도로 ‘연고자’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장사법 제2조 제16호에 따르면 연고자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1순위: 배우자
2순위: 자녀
3순위: 부모
4순위: 자녀 외 직계비속
5순위: 부모 외 직계존속
6순위: 형제자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장사법상 연고자 규정은 화장신고, 봉안, 개장, 묘지 설치 신고 등 장사행정 절차상 권리·의무 행사 기준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는 배우자인 어머니가 장사행정 절차상 우선적 지위를 가지게 된다. 만약 어머니가 화장과 봉안당 안치를 원하며 관련 행정절차를 진행할 경우, 실무적으로 동기가 이를 단독으로 저지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장사법상 연고자와 민법상 제사주재자는 완전히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따라서 장사행정 절차상 권한과 민사법상 유체·유골 관리 권한은 구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통과 현실 사이에서 필요한 것은 결국 ‘조율’
법과 판례의 흐름을 종합해 보면, 이제는 단순히 “장남이므로 내가 결정한다”는 전통적 사고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특히 최근 법원은 성별이나 장자 중심의 관습보다는 가족 구성원 간 협의와 평등 원칙을 더욱 중시하고 있다. 또한 장사행정 실무에서는 배우자의 의사가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전화기 너머 깊은 한숨을 쉬던 동기에게 필자는 이렇게 조언했다.
“지금은 누가 이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버지를 가장 평안하게 보내드릴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법으로 가족이 상처를 입기 시작하면, 장례가 끝난 뒤에도 그 상처는 오래 남는다.”
장례와 추모는 결국 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법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기준일 뿐, 가족의 슬픔까지 치유해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임종을 앞둔 부모의 마지막 길에서는, 법률적 권리보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어쩌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