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한행정사회신문=서현호 ]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러나 나이가 곧 성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다양한 행정 현장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종종 연령과 태도 사이의 괴리를 목격하게 된다.
공자는 『논어』에서 인간의 삶을 연령별 단계로 구분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삼십이립(三十而立),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 육십이순(六十而耳順), 칠십이고희(七十而古稀). 이는 단순한 연령 구분이 아니라, 각 시기마다 요구되는 인간의 내적 성숙과 태도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30세의 이립은 사회적 기반을 스스로 확립하는 시기이며, 40세의 불혹은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판단력을 갖추는 단계이다. 이후 지천명과 이순, 고희에 이르기까지는 점차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회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경지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이상과 다소 괴리가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판단은 흔들리고, 타인의 의견을 배척하며, 자기 확신이 곧 정당성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태도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바로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이는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절대화하는 태도를 의미하며,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조직과 사회 전반의 건전한 관계 형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행정 영역에서는 이러한 태도가 더욱 문제될 수 있다. 행정은 본질적으로 공공성과 객관성을 기반으로 하며, 이해관계자 간의 균형과 조정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그럼에도 특정 개인의 경험이나 판단이 절대적 기준으로 작동하는 경우, 그 결과는 갈등의 심화와 신뢰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불혹의 의미는 단순히 ‘흔들리지 않음’에 그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합리적 기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균형감각이 포함되어야 한다. 즉, 진정한 불혹은 자기 확신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존중이 병행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나이의 축적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만, 성숙은 의식적인 성찰과 태도의 변화 없이는 도달할 수 없다. 이립·불혹·지천명이라는 단계는 결국 스스로를 점검하고 조율해 나가야 할 삶의 기준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이를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기보다, 현재의 태도가 과연 타인을 존중하고 있는지, 공정한 판단을 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결국 사회적 신뢰와 건전한 관계는 제도 이전에 사람의 태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나이에 가려진 안하무인의 태도일 것이다.